[경제상식] 절약역설에 처한 우리경제
조정래의 소설 「정글만리」를 읽다 보니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나오더군요. 중국사람들이 좋아하는 붉은 색으로 명품 지갑을 만들어 선을 보였더니 불티나게 팔렸다는 이야기입니다. 비단 소설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로 여행 온 중국 관광객이 백화점에서 고가의 물건들을 싹쓸이해가고 있다는 것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1) "앞으로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 – 중국"
왜 중국사람들은 이토록 엄청난 소비와 구매력을 자랑하고 있는 걸까요?
그 이유는 그만큼 호주머니가 두둑하다는 의미도 있지만 '앞으로가 지금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현재 주머니가 두둑해도 소비를 잘 하지 않으려 할 것입니다. 이는 소비하려는 욕구보다는 미래의 힘들 때를 대비해 저축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중국사람들이 자신들의 경제수준이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방증입니다. (물론, 그 믿음이 진짜 사실인지 아닌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2) "소득은 늘었으나 소비는 줄었다 – 우리의 현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현실은 어떨까요?
얼마 전 통계청이 발표한 '2013년 1/4분기 가계동향'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명목소득은 419만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1.7% 증가한 반면, 명목 소비지출의 경우는 254만원으로 1%가 줄었다고 합니다. 특히 물가상승률을 감안하여 실질 소비지출로 계산해보면 2.4%나 감소했다는 겁니다. 이러한 감소는 리먼사태가 발발한 후인 2009년 1/4분기 이래 첫 감소라고 합니다.
'소득은 쥐꼬리만큼 늘었을지 몰라도, 소비는 적잖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중국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보다 미래의 소득수준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없으니 소득이 조금 늘어났다고 소비를 마냥 늘릴 수 없다는, 오히려 더욱더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인식이 우리의 실제 경제상황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허리띠를 졸라매고 절약을 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흥청망청(?) 소비하는 중국의 가계에 비해, 우리나라 가계가 절약모드로 돌아섰다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라 볼 수 있겠죠.
(3) "절약이 소득을 감소시킬 수 있다 – 절약의 역설"
하지만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것이 사회 전체로 볼 때는 오히려 경제 전체의 소득감소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내수가 살아나지 않으며 이는 기업의 생산에도 악영향을 미쳐 국민소득이 전체적으로는 줄어든다는 것이죠.
이를 경제학자 케인즈는 「절약의 역설(paradox of thrift)」이라는 이론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사람들의 소득은 소비와 저축으로 구성됩니다. 소득이 들어오면 소비를 하고 남는 것은 저축을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저축을 하고 남는 것을 소비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비를 줄여 절약을 한다는 것은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축은 결국 은행을 통해 기업에 대출되어 시설자금이나 연구개발자금 등으로 투여되고 기업의 원활한 생산에 이바지하게 됩니다. 산업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종자돈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케인즈의 이론에 따르면, 아무리 저축을 많이 해도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으면 기업들이 물건을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한 동기를 찾지 못하게 되니, 굳이 은행에서 설비자금을 대출받을 이유도 없어지게 됩니다. 결국 경제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죠.
(4) "정부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비가 늘지 않았다 – 일본"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이 그러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 소비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금리를 낮추고 돈을 풀고 세금까지 깎아줬습니다.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소비를 하기는커녕 그렇게 해서 생긴 돈까지 모두 은행에 가져갔습니다. 기업에 대출해 줄 돈이 은행에 쌓이면 무얼 합니까? 소비하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돈을 빌려서까지 물건을 만들 기업은 없을 테니 말입니다. 결국 내수는 위축되고 20년간 불황의 늪 속에 허덕대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 또한 명백합니다. 당시 일본사람들 역시 현재보다 앞으로의 생활이 더 어려울 것이란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미래를 위해, 노후를 위해 생기는 돈을 족족 저축했던 것이죠. 그리고 불행히도 절약의 역설이 작용하여 20년간의 불황이 계속되었던 거죠.
(5) "앞으로가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 – 결론"
자! 그럼 결론은 하나같군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우리 모두 저축은 그만두고 이제부터 펑펑 쓰는 것입니다. 소비를 많이 하면 경제가 활성화되고 그러면 소득이 더 많이 생길 테니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이치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제3자적 입장에서 전체가 소비를 늘리는 것은 분명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만, 나 개인이 재정상태를 따지지도 않고 소비를 늘리는 것은 적지 않은 후유증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 과거에 악착같이 돈을 모은 장사꾼들을 봐도 자신은 10원짜리 한 장 쓰기를 아까워하면서 자기가 파는 물건을 많은 사람들이 사주길 바라며 밤낮으로 뛰었습니다.
이렇듯 사회 전체적으로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도움이 되지만, 나 개인이 그렇게 하는 것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을 우리는 종종 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본능적으로 귀신같이 알아냅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게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가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부터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정부가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추어도 사람들은 정작 마음 놓고 소비를 하지 못할 테니 말입니다